사또밥

 

1.방랑시인 김삿갓




드디어 첫회 안동편에 이어서 2회는 강원도 영월로 떠났습니다. 그들이 첫번째 향한곳은 바로 난고 김삿갓 문학관 입니다. 문학관에 들어가자 김삿갓의 [가련기시] 를 보게 되었습니다.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이걸 들은 건축가 유현준은 래퍼라고 말했습니다. 라임이 딱딱 맞아떨어지는게 말이죠. 사랑하는 여인 "가련" 을 주제로 쓴 시 입니다.

 

 

김삿갓을 글을 오늘 보고서 "이사람의 진가는 여기 있구나" 하고 느낀게... 김삿갓의 시중에서 한글로 읽으면 욕인데 한자로 해석하면 다른 뜻이 있습니다. 하나의 한시에 두가지 중의법적인 뜻을 담을수 있는건 김삿갓만 쓸수 있는 시 입니다. 중국사람은 중국말밖에 못하니까... 항상 새로운것은 두가지 다른 문화가 합쳐졌을때 발생하는데 김삿갓이란 사람은 한국어와 중국어를 합쳐서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원래 본명은 김병연 입니다. 김립은 자기가 지은 예명이라고 할까요? 립은 삿갓을 뜻하는 한자입니다. 그런데 왜 그리 삿갓을 쓰고 다녔을까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해석은 영월군에서 주최한 영월도호부 과거 (백일장)에서 "홍경래의 난때 반란군에 맞서 싸우던 관리와 반란군에 항복한 관리의 행위를 비교해서 논하시오" 라는 그런 주제를 받고 거기서 1등을 했다고 해요. 그당시 동네시험에서는 나올법하지 않은 그런 글을 쓴겁니다.

 

 

충신을 엄청 띄우고 , 항복한 사람을 엄청 비판하는 글을 써서 1등했는데... 집에돌아와서 엄마에게 자랑을 엄청하였는데 엄마가 "사실은 거기 네가 욕한 그 역적이 너의 할아버지다" 이렇게 된겁니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거죠. 우리나라 유교에서는 효가 도덕의 근본인데 할아버지를 공개적으로 모욕했기 때문에 "나는 이제 하늘을 볼 자격이 없다..." 그래서 그때부터 삿갓을 쓰고 평생 방랑을 하며 살았다라는 것이 하나의 해석입니다.

 

 

또다른 해석은 할아버지와 관련된 문제를 보고 , 어마어마한 갈등에 사로잡혔을 겁니다. 일어나서 과거시험을 안보고 나올것인가? 아니면 할아버지에 대한 변명의 글을 쓸것인가? 그래서 결국 할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 과거시험을 보고 나온후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평생 삿갓을 쓰고 다녔다. 라는게 두번째 해석이라고 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체제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에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김병연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얻는다면 "알고있었다" 라고 해석을 하는것도 재미있을것이다.

 

 

건축가 유현준씨가 보기에는 그당시 최고의 래퍼였다고 합니다. 라임도 딱딱맞고 , 적절하게 디스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조선 에미넴 되게 SWAG한 최고의 원조 래퍼 입니다.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되게 인기 있는 캐릭터 입니다. 게다가 그당시 양반인데 욕을 쓴것도 엄청 파격적입니다. 역적의 집안으로서 조선의 지배질서에 자신이 들어가지 못한다는걸 아니까 오히려 자유로웠던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그런 방식으로 저항한것일수 있습니다.





2. 사북탄광문화관광촌

 

 

2004년 폐광된 동원탄좌 부지인데 , 상황 그대로 시간을 멈춰놓은겁니다. 그당시 사북지역 광부와 주민들이 보존위원회를 설립하여 노동잘들이 사용했던 물품과 장비 , 시설들을 그대로 보존중이다.

 

 

정말 광부들의 샤워장부터 , 로커룸 , 사무실 까지 2004년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강원도 탄광에서 나온 석탄으로 산업화를 시작한것입니다.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동원탄좌 사북지역 광부들이 일으킨 노동항쟁을 했었죠. 1970년대 석탄산업은 활기가 넘쳤지만 노동자들의 생활은 나이지지 않았습니다. 산업 성장에 비해서 지극히 낮았던 임금인상률과 불합리한 노동조건들 입니다. 그래서 동원탄좌 노조사무실에서 "노조 지부장 직선제" 와 " 사측의 노조원 감시폐지" 를 요구하던 100여명의 광원은 경찰에 둘러싸여 있었죠.

 

 

이처럼 석탄산업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친영향은 "전기부족" 해결에 큰도움이 된것이 바로 석탄입니다. 1980년대 대용량 화력발전소들이 생겨 산업용 전력이 확보되기 시작했고 석탄을 연료로 산업화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1980년대 후반에는 국제유가가 급락하고 , 무연탄 수요가 감소해 석탄산업이 후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안도현 -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밖에도 영월은 참 여행할곳이 많답니다. 부석사 , 고씨동굴 , 패러글라이딩 기타등등 이번주말에 강원도 영월로 떠나보는것은 어떨까요?